1900년대 시칠리아. 아직 당신은 이제부터 잔혹한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근성으로 똘똘 뭉친 마피아 이야기를 체험하게 된다.
2K가 유통하고 Hanger 13이 개발한 '마피아:올드 컨트리'가 8일 스팀에 정식 출시된다. 마피아3 출시로부터 약 9년 만이다. 영화적이고 서사 중심의 경험을 창조하는 것에 힘쓰던 Hanger 13은 9년의 세월을 거쳐서도 우리에게 '영화적인 서사'를 중심으로 마피아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전작들과의 차이점은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보다는 이야기에 따라 챕터가 진행되는 서사 중심의 진행이 됐다는 것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가능한 초반부만 이용해 스포일러를 배제하며 이야기를 풀어본다.
■ 1904년. 막장 소년
이야기는 1904년 시칠리아의 한 막장에서 시작한다.
아버지가 헐값에 팔아넘겨 광산 노역을 하게 된 주인공 엔조는 막장의 친구와 함께 돈을 모으며 엠파이어 베이, 그러니까 마피아 세계관의 미국 뉴욕으로 떠나는 것을 준비하며 힘겨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광산을 관리하는 것은 이 지역의 세력을 양분하는 마피아 스파다로 패밀리의 일원이다.
모종의 사건으로 스파다로 패밀리에게 쫓기게 된 엔조가 토리시 패밀리에게 구출되면서 엔조는 막장의 소년이 아닌 토리시 패밀리의 고용인이 되어 누추한 창고 같은 장소라도 자신의 방을 얻고, 루카라는 멘토와 보스 돈 토리시의 조카 체사레라는 친구를 얻게 되며 점차 마피아의 세계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이런 스토리의 흐름은 시대적으로 미래를 다루는 마피아 1편과 마치 오마주처럼 닮은 구석이 있다. 마피아 1편의 주인공 토마스 안젤로는 평범한 택시 기사로 활동하다 공격받아 마피아 살리에리 패밀리와 함께하게 되었다면, 마피아:올드 컨트리의 주인공 엔조는 소년 시절 막장에서 일하다 쫓기게 되고, 토리시 패밀리에게 구조되어 그들과 함께하게 된다.
이후의 이야기 전개에서도 기존의 마피아 시리즈를 오마주한 것 같은 전개나 장면, 임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끝까지 플레이하면서 느낀 것은 엔조의 이야기가 마치 앞으로 벌어질 마피아 3부작의 주인공들에 대한 메시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 몰입도 높은 이야기와 연출
양복쟁이 마피아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대화하거나 멋들어진 차를 몰며 토미건을 갈겨 상대 마피아 세력을 밀어버리는 누아르 풍의 이야기? 거의 다 마피아:올드 컨트리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다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조금 옛스러운 장비와 환경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아, 참고로 토미건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마피아2 DE를 플레이했다면 비토의 1911 피스톨은 사용할 수 있다.
오픈월드 방식으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시퀀스가 제외되면서 시간만 있다면 계속해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점차 플레이어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편이다.
엔조의 시작은 좀 누추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막장에서 시작한 엔조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플레이해서인지, 스파다로 패밀리와 토리시 패밀리의 묘한 대립 관계에서, 토리시를 위한 승부에서, 그리고 패밀리를 위한 일에서 눈을 부릅뜨고 성공과 승리를 쟁취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무대가 되는 시칠리아의 풍경도 스토리의 전개에 따라 엔조, 플레이어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만 같은 변화를 보여주기도.
정해진 이야기를 따라가는 방식이다보니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은 편이다. 다만 이것은 시스템적으로도 그렇지만 엔조의 심리나 놓인 상황을 봐도 엔조가 주어진 일 외에 다른 것을 행하는 경우가 그다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타당하다.
그래도 기껏 처치한 적에게서 파밍한 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상점이 상황에 따라 안 열리기도 하며 갈 수 있는 타이밍이 적은 편이란 점은 좀 아쉽긴 하다.
이 게임에서 엔조의 다양한 능력들을 강화해주는 일종의 장비 시스템으로 부적이 있다. 부적의 핵심 파츠로 1개만 넣을 수 있는 메달과 상점 업그레이드를 통해 개방할 수 있는 구슬 슬롯 네 개로 적에게서 얻는 화폐 증가나 발소리 감소, 원거리 공격 강화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상점을 이용할 타이밍이 생각보다 잘 나지는 않는다는 점은 이 부적 때문이다. 당장 제일 처음 부적을 강화할 수 있는 상점에 갔을 때는 열심히 돈을 획득해뒀더라도 부적 슬롯을 열기 어려운데 이후 몇 장이 지나서야 상점에서 열지 못한 부적의 구슬 슬롯을 전부 열 수 있었다. 대략 중반부 즈음에 말이다.
그래도 무기나 차량, 말 같은 경우야 집과 토리시 패밀리의 아지트인 포도원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번 작품에선 루카에게 꽤 애착이 갔다
■ 옛날 총이라 그런가? 잘 안 맞네?
전투는 보통 기준으로 조심하지 않으면 충분히 죽을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다. 엄폐물도 경우에 따라서는 박살나기도 하는데, 쏘려고 몸을 내밀었을 때 타이밍을 잘 맞추지 않으면 피격당할 수 있고, 전체 체력의 총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몇 대 맞다보면 황천길에 가기 쉽다. 때문에 몸을 숨기며 싸우는 것은 사실상 기본적인 전투법이다.
또,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총기가 1900년대 초반의 것들만 등장하니 명중률이나 사용법이 현대풍의 게임들에 비해 다루기 조금 까다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총기를 겨눠 조준하면 서서히 조준선이 모여 정밀도가 오르는 방식으로, 이게 어느 정도 좁혀지기 전에 쏜다면 탄이 원하는 곳에 안 맞는 경우가 있다.
몇 번 죽기도 하면서 느낀 사격전의 팁은 가만히 있는 한 명의 적을 상대할 때에는 침착하게 조준해 올라오는 순간 쏴버리는게 처치하기 편하고, 이동하는 적의 경우 대각선이나 횡방향으로 이동하며 접근하는 적을 쏠 때 조금 더 앞을 적절한 거리감으로 쏴버리면 그대로 노린 부분에 들어간다.
조준이 잘 맞지 않으면 권총이나 라이플은 코 앞에서 한 발도 제대로 맞출 수 없을 때도 있어 어떤 상황이든 침착하는 것이 상당히 유효한 대처법이다. 그리고, 최대 탄약량도 적은데다 적들 또한 가만히 엄폐물에서 쏘는 것이 아닌 일부 인원이 엔조를 향해 접근하므로 전방만이 아닌 좌우와 후방까지 조심해서 애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싸우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1:1 나이프 파이트 같은 순간들이 존재해 긴장감을 더욱 높여준다.
잠입을 할 수 있는 임무는 대개 들키지 말라고는 하더라도, 자기가 적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다면 걸리는 것도 무방하다. 플레이어가 조용히 갈 것인지 혹은 과격하고 시끄럽게 갈 것인지를 임의로 정하거나 상황에 따라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은신 임무라고 걸리자마자 체크포인트로 무조건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꽤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여담으로, 옛날 총이라 그런지 가만히 엄폐하면서 화면을 보다 보면 이쪽으로 날아오는 탄환들이 눈에 보인다는 것에서 뜻밖의 시대감을 느끼게 한다.
■ '아는 이야기'도 '보고싶은 이야기'로
마피아:올드 컨트리에서는 사실 마피아 이야기라고 하면 떠오를법한 전개들이 이어지는 편인데도, 막상 플레이를 해보면 엔조의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 나아갈수록 점차 '이 부분까지만 보고 쉬어야겠다'를 반복하다 결말까지 도달하게 된다.
엔조가 돈 토리시, 루카, 체사레나 이사벨라와 쌓아가는 관계는 게임의 스토리라인이 종종 몇 개월에서 년 단위로 시간을 건너뛰는데도 나름대로 연속성을 느끼게 해주고 그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길 만큼의 시간과 서사는 확보해준다. 잘 몰입하는 게이머라면 토리시 패밀리에 대한 보은의 느낌으로 시키는 일을 꼭 성공하고 싶어지기도 할 수 있다.
은인이 이런 말을 하면 도와주고 싶어질테니까
그렇기에 몰입도가 올라가고, 대강 아는 이야기도 이 다음이 보고싶은 이야기로 느껴져 계속해서 스토리를 진행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다. 또, 마피아의 원류라고 생각되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초기 마피아들의 모습을 분위기 있게 잘 구현해 가족 같은 느낌, 명예나 잔혹함, 서슬퍼런 날 위에 선 것 같은 분위기 등 마피아라는 요소에서 느낄만한 부분들이 피부로 와닿는다.
조금 아쉬운 것은 컷신이 아닌 평상시 대화 상황에서 캐릭터들의 시선처리다. 괜찮은 경우도 있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인게임에서 대화를 하는 경우 일부 캐릭터들은 엔조를 보는 것 같지 않은 묘한 시선처리 문제가 느껴질 때가 있다.
엔딩 이후 컨텐츠나 뉴 게임 플러스 같은 요소가 없다보니 생각보다 이곳저곳에 많이 숨겨진 수집품들을 모으고 나면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마른다는 부분은 아쉽다. 이는 오픈월드를 포기하고 서사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반작용이라 생각되나, 본편이 즐거웠던 만큼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적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수집 요소는 굉장히 많고 평범하게는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으니 소소하게 찾는 재미가 있다.
시칠리아 마피아 누아르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마피아:올드 컨트리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