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소울, 블러드본 등의 난이도 높은 액션 어드벤처 게임들로 유명한 프롬 소프트웨어와 액티비전이 공동 개발하고 에이치투 인터랙티브가 유통한 '세키로:섀도우 다이 트와이스(이하 세키로)'의 PC 한국어판이 지난 22일 스팀 플랫폼에 정식 출시됐다.
세키로는 16세기 말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독한 닌자의 싸움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며 RPG 장르적 요소가 가미된 신작이다. 잔인하고 유혈이 난무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고조되는 긴장감과 함께 플레이어를 매혹적이면서도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주인공인 '늑대'는 주군을 지키기로 맹세한 닌자이며 어린 주군을 빼앗기고, 죽음에서 건져올려진 뒤 다양한 기능을 가진 닌자 의수를 착용하고 험난한 싸움에 나서게 된다.
세키로는 동사의 기존 작품들과 비교해도 빠른 속도감과 타격감, 더 어려워진 난이도 등으로 무장된 전투를 비롯해 닌자 의수를 통해 구현되는 다양한 액션과 이를 활용한 대처법 등 시스템적인 변화와 프롬 소프트웨어의 손으로 재해석된 어두우면서도 화려한 일면이 드러난 일본의 전국시대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 체간 시스템과 인살
화려하게 칼을 휘두르는 주인공의 모습에 잠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일본 전국시대 배경의 세키로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할 주인공인 늑대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닌자다. 다대일보다는 1:1에 더 특화된 전사인 닌자이기 때문에 초기의 주인공은 놀랄 정도로 약하다. 아주 약한 적이 아닌 그 다음 단계의 잡졸만 여러 명이 쌓여도 아차하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기 딱 쉽다. 미니 보스나 보스 등 강한 적에게는 한 번의 공격만 받아도 체력의 반 이상은 기본이요 거의 빈사 직전까지 피해를 받기도 한다. 이런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는 요소가 일종의 부활 및 체크포인트인 불상에 존재하나 기존 소울 계열의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세키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투 시스템은 체간 시스템과 인살이라고 할 수 있다. 체간 시스템은 플레이어나 적이 자세를 무너뜨리게 되는 상태를 게이지로 가시화한 것으로 체간 시스템이 가득차면 자세가 무너지며 이 때 인살이라는 즉사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된다. 체간은 공격을 튕겨내면 서서히 쌓이게 되고 일반적인 병사들부터 보스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수치다. 괴수형 보스보다는 인간형 적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체간은 사실상 또 다른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보스들은 한 개의 체력이 아닌 두 개 이상의 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밀히 접근해 인살을 가하고 다시 체간을 무너뜨려 인살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편한 공략 방식이기도 하다.
소울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세키로도 반복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익숙해진다면 다수와의 전투도 소화할 수 있게 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대일을 피하는 편이 전투가 수월하다. 이미 정보를 많이 접해서 알고들 있겠지만 이번 작품은 소울 시리즈와 달리 회피 위주보다는 공격, 튕겨내기를 구사하면서 더 빠른 호흡으로 이루어지는 전투가 주를 이루며 일반적인 적부터 보스까지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다. 특히 현재로 돌아와 처음 만나게 되는 보스인 적귀는 많은 플레이어를 분노에 빠뜨린 악질적인 보스로 유명하다. 밑에 있는 두 명의 병사를 죽여도 적귀 쪽으로 올라가면 공격 거리가 긴 창병이 한 명 달려오고 적귀와의 전투를 방해해 난이도가 더욱 상승한다. 이런 유저 입장에서 불합리하다고 느끼게 되는 난이도의 적 배치도 난이도 상승에 한몫을 한다.
여기에 세키로식 강화 시스템까지 발목을 잡아 플레이어의 기술을 단련시킨다. 플레이어는 닌자 의수에 몇 가지 기능을 장착할 수 있고, 다섯 개의 아이템 슬롯과 1개의 액티브 스킬 슬롯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보스 몬스터는 적에게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엿듣기가 가능한 적을 엿들으면 약점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고 실제로 이 약점을 활용하면 다소 난이도가 쉬워지는 편이나 이걸로도 어려움을 느끼는 플레이어가 이를 개선할 방법이 없다. 강한 적을 쓰러뜨리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네 개 모아야 아주 조금의 체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 따라서 적귀와 3년 전의 닌자사냥꾼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는 3년 전 루트에서 적들을 처치하다 죽는 걸 반복하며 경험치를 얻어 스킬을 습득하거나 두 보스 중 하나에 들이받으며 어떻게든 실력을 향상시키는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자주 죽으면 늑대가 부활한 수 있는 용윤의 힘이 주변에 악영향을 끼쳐 NPC들을 병들게 하고, 이들을 고치려면 특정 구간까지 도달해 특정 아이템을 습득해야만 한다.
세키로의 전투 시스템은 빠른 호흡으로 이루어지는 훌륭한 속도감과 타격감의 전투가 즐겁고 보기에 멋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난이도가 높아 분을 쌓으면서 즐기게 된다.
■ 더 많은 가능성 생긴 탐험
프롬 소프트웨어의 액션 어드벤처 시리즈는 탐험, 그러니까 플레이어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꽤 자유롭게 풀어두는 편이었다.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최종 보스나 주요 스토리 골자는 정해져있지만 보스의 순서를 플레이어가 가는 길에 따라 선택적으로 고를 수 있다거나, 다양한 숨겨진 요소 등을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상을 탐험하는 이유를 제공했다. 그런 방식은 세키로에서도 유지된다. 조금 더 강화된 방식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대부분의 지역을 제작하거나 징그러운 캐릭터 디자인들을 다수 선보였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꽤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지역들을 보여준다. 망국의 닌자가 되면서 음울한 분위기로 시작한 도입부에서도 조금만 진행하다보면 몽환적인 느낌의 갈대밭을 목도할 수 있고,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는 버려진 절은 초록이 어우러진 죽림과 허름한 절의 모습이 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어떤 지역에서는 어두운 느낌을, 어떤 지역에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세키로에서는 크게 보면 황자가 납치당한 현재와 3년 전의 과거라는 무대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진행하게 된다. 극초반부터 NPC를 통해 과거로 향할 수 있는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싸우게 되는 보스 순서가 달라진다. 두 쪽 다 세키로의 어려운 난이도로 대동소이하지만 한 쪽이 막히면 반대쪽 시대에서 진행하는 방식도 선택 가능하다.
다양한 분위기의 맵에 늑대의 팔에 장착된 닌자 의수가 보다 강화된 탐험 요소를 만들어낸다. 닌자 의수는 특정 지점에 줄을 발사해 걸고 이동할 수 있는데, 이를 잘 활용해 단순히 전진과 후퇴만으로 탐험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곳에도 숨겨진 요소가 있나 싶은 장소에도 갈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낙사와 추락사로부터도 한결 자유로워져 다소 대담한 시도도 가능해지며 지금도 하드모드 개방 등 숨겨져 있는 요소들이 발견되고 있다.
■ 유다희를 잇는 사사
세키로를 하면서 느낀 바로 세키로는 기존 액션 어드벤처 작품인 다크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과는 또 다른 방향성으로 개발된 작품이라는 점이 있다. 다크소울 계열에서는 치고 구르기 같은 회피기 위주의 싸움을 벌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세키로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졌을 때 구사하는 추가 패턴, 즉사기를 넣을 수 있는 체간 시스템을 통해 히트앤런보다 공격과 튕겨내기를 주로 사용하도록 유도하면서 빠른 합의 전투를 이끌어냈다. 그렇다고 회피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 공격 유형에 따라 점프로 튕겨낼 수 없는 공격을 피하거나 회피 조작으로 잡기 패턴을 피하는 등의 다양화도 추구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의외로 전투에서 사망한 주인공을 되살릴 수 있는 '부활' 시스템이 들어갔는데, 이 시스템의 존재로 예감한 사람도 있겠지만 부활이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난이도가 꽤나 높다. 소울 시리즈에 익숙한 플레이어라도 전투 시스템이 추구하는 바가 다른 세키로에서는 초반에 헤멜 요량이 있고, 아예 세키로로 처음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을 접한 신규 플레이어라면 수시로
죽고
죽고
죽고
또 죽고
부활했다 다시 죽고
를 반복하게 되기 쉽다. 그래도 화는 나지만 재미있다는 점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세키로를 꾸준히 붙들고 있게 한다. 어려운 만큼 클리어했을 때의 달성감이 큰 편. 전작들에 비해 스토리도 꽤 많이 부각시켜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추측해야만 하는 부분이 많이 줄어들었다.
한편 적의 디자인에 불만스러움을 토로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세키로 이전의 소울 게임들은 다양한 디자인의 적들이 등장했던 것과 달리 일본 전국시대에 약간의 환상 요소를 가미한 세키로에서는 대부분의 적이 일본인 병사거나 사무라이가 등장하면서 반복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 배치도 아니기는 하지만 기존의 다양성을 좋아했던 플레이어라면 조금 아쉽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인간만 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트레일러에서 공개됐던 압도적으로 거대한 흰 뱀이나 모두를 경악으로 몰고 간 난이도의 동물형 보스 등 볼거리는 여전하다.
게임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는 싫다는 플레이어라면 추천하기 어렵겠지만 프롬 소프트웨어의 팬이거나, 어려운 난이도의 액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라면 강력 추천.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