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NDC의 둘째 날, 6월 10일 반지하게임즈의 창립자이자 공동대표인 이유원 대표가 서울2033 포스트모템 - 텍스트 게임으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서울2033은 2018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라이브 서비스 중인 게임으로 대부분의 요소가 텍스트로 이루어진 독특한 형태의 모바일 인디게임이다. 그는 이번 세션을 통해 약 3년간 꾸준히 라이브 운영을 진행하며 겪은 여러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서울2033이 100만 다운로드와 일일 이용자 1만 5천여 명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반지하게임즈는 이유원 대표가 대학교 2학년이던 시기에 공동대표들과 함께 결성하게 됐다. 당시엔 셋 다 모두 경험이 부족해 간단한 버튼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시간을 쪼개고 창작을 하며 2016년 허언증 소개팅!을 출시해 3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첫 도전치고 큰 성과를 거뒀고 2018년 중고로운 평화나라는 70만 다운로드를 기록, 인터넷 스트리밍이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는 이런 결과들이 단순히 일시적인 유행이나 단발적 현상일 것으로 치부하고 게임 개발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고 라이브 서비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차기작은 바퀴벌레를 증식시키는 클리커 게임 또는 고교 농구부를 육성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막간을 위해 토이 프로젝트로 시작된 것이 서울2033이다.
■ 서울2033의 기획
텍스트만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라는 아이디어는 그가 대학생 시절 백남준의 작품을 보고 '게임의 본질이 그래픽이 아닌 재미라면 모든 것이 텍스트로 구현된 게임은 없을까?'라는 감상을 느끼면서 시작됐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플래시로 처음 서울2033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과방 친구들에게 체험시키며 반응을 조사했다고 한다.
표현 방법으로 텍스트가 결정되었으니 다음으론 테마와 게임 장르를 결정해야 했다. 포스트 모던과 확장성을 테마로 삼았는데, 간결한 묘사만으로 유저의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끔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발상에서 포스트 모던의 힘에 기댄 것이며 컨텐츠 확장이 텍스트 추가로 이뤄질 것을 예상, 언제 어떤 이야기가 추가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넓고 자유로운 테마가 필요함을 느꼈다.
한편 게임 장르의 선정 기준으론 직관성과 몰입을 꼽았다. 방대한 텍스트를 꼼꼼히 읽게 하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게임 상황을 이해시킬 수 있게 하는 편이 나았으며 유저가 텍스트를 읽는 과정을 노동이 아닌 유희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몰입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론 나만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목표로 이는 실제 게임의 이벤트 구성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일련의 기획 과정들을 거쳐 서울2033의 장르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선택지형 자원 관리 어드벤처로 결정됐다.
그는 고전 선택지형 게임의 수형도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안한 서울2033의 이야기 구조를 적용시켜 효율성과 상호작용성 사이에서 최적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도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플레이 과정 내내 수없이 많은 다양한 변수들을 기록하고 활용하고 있다. 또한 생동감 있는 나만의 이야기란 컨셉을 강화하기 위해 초기부터 업적 시스템을 기획했다. 업적 시스템은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힌트 역할을 하는 한편 자신의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해준다는 측면에서 좋은 기획이었다.
■ 디자인과 개발환경
디자인 측면에선 가독성이 최우선 과제였다. 여백과 텍스트 영역, 글씨 크기 및 간격 커스텀 기능 등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 당시 디자이너는 서울2033의 UI 컨셉을 잡기 위해 종이책과 전자책을 참고, 일러스트는 유저의 상상력을 해치지 않는 삽화 느낌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개발 측면에선 git과 JSON 스크립트를 활용한 역할 분담이 제일 먼저 결정되었다. 장르 특성상 서비스를 지속하며 텍스트 추가와 수정이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어 업데이트마다 개발자를 거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판단 하에 내려진 결정이다. 이 협업환경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는 txt 파일을 자동으로 스크립트로 변환하는 자체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개발자와 기획자, 작가 사이의 간격을 더욱 줄였다.
빠르게 소모되는 스토리 컨텐츠의 특성상 빠른 업데이트가 요구되는데 MS 앱센터를 사용함으로 실시간 업데이트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한편 아이디어 자체가 막간의 토이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부담도 적은 편이었고 기획 의도를 전달 받은 각 구성원이 자신의 임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분담해 개발 자체에 어려움은 없었다. 실 개발은 약 2개월 정도였지만 유저 유입량과 속도는 기존작들에 비해 더 컸다.
■ 커뮤니티와 유저 친화적 행보
개발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지만 출시 이후 부족한 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컨텐츠 부족, BM 미비, 라이브 서비스 준비 미흡 등이 그렇다. 출시 이후 가장 신경을 기울인 것은 디시인사이드 마이너갤러리, 네이버 카페 등을 통한 팬덤 커뮤니티 활성화였는데 당시 자체 사이트를 운영할 여력이 없었기에 접근성 높은 이런 채널 활용이 주효했다. 더불어 뉴 미디어로 소통하는 신세대 인디게임 개발사의 이미지도 확보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 활성화의 일환으로 반지하게임즈는 서울2033의 팬아트, 아이디어 공모전 등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이야기꾼 공모전을 통해서는 정식 스토리 작가를 채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IP가 강화되고 팬층이 확보되자 굿즈 판매나 SNS 이벤트 나눔 등 마케팅과 매출 측면에서 좋은 효과를 얻게 되었다.
커뮤니티 활성화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유저 반응을 통한 유저 분석이었다고 한다.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임 추천글을 가장 주의깊게 보고 게임의 어떤면이 유저들에게 어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확장팩 출시마다 다른 기법을 사용한 후 반응을 확인하며 유저 성향을 특정할 수 있었다. 서울2033 유저들은 게임 규칙, 전략성, 효율을 중시하는 루돌로지형 유저와 스토리, 설정, 다양성 등을 중시하는 내러톨로지형 유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파악해 향후 컨텐츠 업데이트 방향 정립에 큰 도움을 얻게되었다.
기존에는 루돌로지나 내러톨로지 한쪽에만 힘을 줬지만 확장팩 기획을 거듭하면서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를 모두 챙기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 다양한 마케팅 기회
초기 서울 2033의 유저 유입을 견인한 건 유튜브와 트위치 등에서 노출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특한 게임성으로 바이럴 효과를 얻었고 시각장애인 유저 접근성 개선 이슈로 언론 보도가 되기도 하면서 많은 유입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유니버셜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는데다 지속적으로 시각장애인 유저들과 리뷰 및 이메일로 소통하고 있으며 최근 스토리 팀에 시각장애인 작가가 합류해 더욱 효과적으로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라이브 서비스의 장기화에 따라 기존 BM을 재구성해 인앱 광고 및 유료 앱 판매 이원 구조에서 상점, 인앱 재화, 확장팩, 자체 후원, 스킨 판매 등을 이용한 새로운 수익 창출 BM을 마련했다. BM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야기꾼의 연습장이다. 특정 컨텐츠 업데이트에 앞서 미리 공지하는 역할도 하지만 유저들이 원하는 만큼 후원해 개발 일정을 앞당기게 하기도 하는 BM의 역할을 수행한다. 유저 반발이 클 수 있는 특이한 시스템이지만 컨셉과 보상이 니즈에 맞으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서울2033만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BM 개선을 진행하며 유저 데이터 분석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쇼핑의 재미를 살려 정기적인 확장팩 출시와 다양한 방식으로의 패키지화를 통해 상품을 다양화했다. 또한 푸시 보상과 할인 등을 적극 활용하면서 리텐션과 DAU가 크게 늘고 유의미한 매출 증가를 보여줬다. 이런 테크니컬한 방법 외에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꾸준히 잘 해왔던 유저친화적 운영이 BM 기획과 관련된 모든 시도에서 항상 든든한 아군이 되어 왔다는 것.
■ IP의 확장
서울2033의 IP는 오랜기간 많은 유저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작중에는 비단 반지하게임즈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유저들의 경험과 창작물까지도 녹아들어가 있다. 최근엔 보드게임 분야에 진출해 카드 대전 게임이라는 완전히 색다른 장르로 서울2033을 재해석하고자 했으며 서울2033:유시진과 서울2033:방공호라는 본편 시점에서 18년 전을 다룬 프리퀄 단편을 출시하기도 했다.
단지 스토리만 바꾼 게임이 아니라 독립적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라 게임 구조에 독특한 시도를 했는데 유시진은 폴드백 기법을 통해 텍스트 위의 방탈출 방식 어드벤처 게임을 구현하고자 했고, 방공호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플레이어 선택으로 구성된 캐릭터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게임을 의도했다. 이 둘은 유료앱으로 출시되어 차트 상단에 오래 체류하며 신규 유입과 기존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됐다.
반지하게임즈가 보유한 스토리 인력은 타 IP의 텍스트 게임화에도 유리한 면을 가지고 있어 현재 네이버웹툰과의 협업으로 웹소설 및 웹툰의 텍스트 게임화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2033 IP 확장은 그들에게 있어 신나고 보람찬 일이나 글로벌 진출 측면에선 아직 어려움이 많다. 장르 특성상 많은 텍스트량 때문에 천문학적 번역 비용이 요구되고 로컬라이제이션과 검수 난이도도 무척 높다. 거기다 회사 규모가 작아 적극적 마케팅이 어려워 글로벌 진출은 플랫폼 피쳐드만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에도 아쉬움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최근 서울2033:방공호의 글로벌 출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이유원 대표는 "아류로 성공하느니 오리지널로 망하자"라는 반지하게임즈의 모토를 소개하며 서울2033의 포스트모템 세션을 마무리지었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