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시드의 부진, 부족한 변별력

2026 롤드컵 스위스 스테이지 이모저모
2026년 11월 03일 10시 57분 34초

2026 롤드컵 스위스 스테이지도 마무리되고 이제 8강팀이 겨루는 녹아웃 스테이지만이 남았다. 

 

올해는 유독 예상 밖의 결과가 많았던 본선이다. MSI 우승팀인 한화생명e스포츠가 탈락했고, LPL 1번 시드 AL은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G2 역시 1승 3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반면 디플러스 기아는 3승 무패로 8강에 진출했고,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던 KC와 LYON도 살아남았다. 심지어 6개 지역의 1번 시드 중 8강에 진출한 팀은 젠지가 유일할 정도로 1번 시드의 부진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최종 결과는 익숙하다. 이번에도 LCK와 LPL이 8강의 여섯 자리를 차지했다. 이변은 많았지만 결국 결과는 비슷했다는 말이다. 

 


 

- 스위스 스테이지, 과연 최선인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과 중 하나는 1번 시드들의 몰락이다. 각 지역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팀들이 정작 롤드컵에서는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물론 실제 경기력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의 대회 방식 역시 이러한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스위스 스테이지는 첫 라운드에서만 시드 순위를 반영한다. 이후에는 같은 승패를 기록한 팀끼리 무작위 추첨을 통해 상대를 결정하기에 사실상 1번 시드의 혜택이 첫 경기에서 끝나는 셈이다.

 

1번 시드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강팀을 피하는 대진은 스위스 스테이지 하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심지어 단판과 3판 2선승제가 혼합되어 있기도 하다. 

 

문제는 단판과 다전제는 그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단판 경기는 약한 팀이라도 강팀을 꺾을 가능성이 있지만 다전제로 갈수록 실력 차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팀을 단판에서 만나고, 어떤 팀을 다전제에서 만나는지조차 추첨으로 결정된다.

 

그만큼 팀 별로 상당한 유불리가 적용된다. 이는 1번 시드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G2는 디플러스 기아와 TES, 한화생명 등 강팀들과 경기를 펼치며 탈락했다. 

 

반면 LYON은 LCK와 LPL 팀들에게 모두 패했음에도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상대적으로 후반부 대진의 수혜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국제전이라는, 그리고 한해 최고의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 팀들을 전혀 만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모두가 같은 난이도로 공평하게 대회를 진행하지 못한다는 소리다.  

 

과거 그룹 스테이지는 각 그룹 별로 지역 안배를 통해 다양한 지역 팀들과 승부가 펼쳐졌다. 이 역시 대진운이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LCK나 LPL 팀들을 만나지 않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대진 상대가 확정되어 있는 만큼 충분히 준비를 할 수도 있었다. 

 

그에 반해 스위스 스테이지는 다음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 한 번의 패배가 다음 대진에 영향을 미치고, 탈락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는 강팀을 만나 대회가 끝날 수도 있다. 

 

이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데 단 몇 시간의 여유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상대를 분석하는 시간도 부족하고 100% 전력을 보여주기도 어렵다. 이는 경기 결과에 보다 많은 변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는 만족스러운, 또 누군가에게는 답답함이 남았을 만한 대진

 

패배가 누적될수록 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전 경기에 강팀을 만났다고 해서 다음에 손쉬운 상대를 만나는 것도 아니다. 다음 상대를 모르기에 더더욱 패배를 하면 할수록 부담감도 커진다. 

 

적극적인 플레이보다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경기 운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강팀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부담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평소의 경기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실제로 AL은 이러한 부담감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올해를 포함해 스위스 스테이지 경기들이 마치 수비 축구를 보는 것처럼 지루하면서도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국제전인데 국제전이 아닌 이상한 상황도 연출된다. 그룹 스테이지 상에서는 같은 지역 팀을 만날 일이 전무하지만 스위스 스테이지 방식에서는 빈번하게 내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강제로 같은 지역 간의 대결이 금지되는 1라운드를 제외하면 이번 시즌에서의 내전은 총 25경기 중 5경기가 펼쳐졌다. 정확히 20%다. 심지어 많은 팀이 출전한 LCK와 LPL이 각각 2경기로 가장 많다. 

 

누군가는 ‘운도 실력’이라는 말로 치부하지만 자신이 전혀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의 결과(운)는 결코 실력이 될 수 없다. 스위스 스테이지는 바로 이 제어할 수 없는 ‘운’에 너무 많은 것이 걸려있다. 

 

어차피 우승을 하려면 다 이겨야 한다는 말도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팀이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팀에게는 본선 진출, 그리고 어느 팀에게는 8강 진출, 누군가에게는 1승이 절실할 수도 있다. 

 

현재의 스위스 스테이지는 변별력도, 그렇다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불합리함이, 선수들 입장에서는 제 실력을 100% 낼 수 없는 단점만이 존재한다. 

 

매년 언급하는 말이지만 방식의 변경이 절실히 필요하다. 적어도 이를 보완할 장치가 추가되어야 한다. 

 

다양한 팀들에게 8강 진출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얻는 이점이 기존 조별리그가 가지고 있던 장점들을 포기할 만큼 큰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뷰어십의 증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는 공정해야 한다.

 

- 지역 간 격차는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이번 대회 초반에는 LPL의 부진이 상당히 두드러졌다. 첫 라운드에서 네 팀 모두 패했고, 특히 유럽 팀들에게 연패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존의 지역별 경쟁력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의 결과다. 반면 유럽과 북미 팀들은 단판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다전제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LCK와 LPL이 각각 세 팀씩 8강에 진출했고, 유럽과 북미는 한 팀씩 살아남는 데 그쳤다.

 


 

물론 단판에서 강팀들을 꺾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이것이 실제 지역 간의 전력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다전제로 갈수록 기존 강팀들의 우위가 나타났고, 실제 8강 진출팀의 구성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LCP와 CBLOL의 격차는 상당히 줄어든 느낌이다. 작년 CFO가 국제 대회에서 보여줬던 경쟁력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올해는 LCP 참가팀들이 모두 탈락했다. 반면 브라질의 LOS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살아남으며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LCK와 LPL은 이전과 비슷한 정도의 차이다. 다만 LEC와 LCS는 이제 LEC가 우위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LCS와 CBLOL 역시 동일하다. 과거처럼 LCS가 CBLOL에게 확실히 앞선다는 느낌보다는 충분히 승부를 겨룰 만한 정도까지 근접한 느낌이다.  

 

- 피어리스 드래프트, 기대에 미치지 못한 다양성

 

이번 롤드컵은 피어리스 드래프트가 적용됐음에도 생각보다 다양한 전략을 보기 어려웠다.

 

스위스 스테이지 자체가 단판 경기가 많은 방식이다 보니 대부분의 팀들이 현재 메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챔피언을 우선적으로 사용한 것이 이유다. 여기에 대진 상대가 저녁에 결정되다 보니 다양한 밴픽을 활용하지 못한 것도 이유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올 시즌은 유난히 경기마다 비슷한 챔피언 조합이 반복됐다. 마치 과거 롤드컵을 보는 느낌이다. 

 

물론 5전제가 진행되는 8강부터는 준비 시간도 어느 정도 존재하고 보다 다양한 밴픽이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적어도 스위스 스테이지에서는 상당히 뻔한 조합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메타 챔프의 성능이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에 반해 매년 롤드컵에서 인기를 얻었던 아지르가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도 특징적이다. 

 

- 엇갈린 강팀들의 운명

 

이번 스위스 스테이지에서는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팀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한화생명과 G2, AL의 탈락은 의외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화생명의 8강 실패는 정말 의외의 결과다

 

반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디플러스 기아와 LOS, 그리고 여러 악재가 겹쳤던 TES는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한화생명은 세밀한 운영보다는 선수들의 강력한 체급을 바탕으로 승리하는 팀이다. 카나비와 제우스, 구마유시 등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강한 선수들이 모여 있는 만큼 서로의 움직임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번 롤드컵에서는 강력한 선수진에 비해 팀웍이 살아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G2 역시 캡스의 부진이 있었지만 팀 운영이 매끄럽지 못한 이유가 더 크다. 캡스 역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AL은 더욱 심각했다. 바텀 밴픽과 전략을 담당하던 코치가 비자 문제로 현장에 오지 못했고, 메타 적응도 좋지 않았다. 여기에 연패가 이어지면서 자신감마저 잃은 모습도 노출됐다. 

 

그에 반해 디플러스 기아는 상대적으로 선수들의 체급이 높지 않음에도 좋은 팀플레이를 보여줬다. 특히 '쇼메이커'를 중심으로 선수들의 합류가 빠르게 이루어졌고, 상하체의 움직임도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TES 역시 비슷하다. 주전 탑 라이너의 비자 문제로 급하게 '369'를 복귀시켰지만 오히려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369가 과거의 좋은 경기력을 되찾았고, 선수들이 서로의 움직임에 맞춰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치면서 기존보다 안정적인 경기력이 만들어졌다. 개개인의 체급은 높지 않지만 예상보다 좋은 팀플레이를 보여준 LOS 또한 나쁘지 않은 결과를 냈다. 

 

BLG 역시 처음부터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실제로 2패를 기록한 이후 '바이퍼'가 선수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지적할 정도로 팀 내부의 의사소통이 좋지 않았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나마 마지막 한화생명전에서는 이를 일부 해결하면서 결국 8강 진출에 성공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양상을 보면 결국 롤드컵은 팀의 전력보다는 오히려 얼마나 팀플레이가 잘 되는지가 성적에 영향을 크게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팀들은 선수들의 움직임이 효율적이고 유기적이었던 반면, 탈락한 강팀들은 개인 기량에 비해 팀플레이가 좋지 못했다. 특히나 최근 우승을 이어가고 있는 T1은 팀웍이 상당히 좋은 팀으로 유명하다. 

 


T1의 4년 연속 결승 진출과 팀웍이 상당히 좋다는 점은 분명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물론 밴픽이나 메타 적응, 대진 운 등의 영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롤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팀웍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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